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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솔) 큰오빠

2021년 11월 23일 09:56

관리자 2021년 11월 23일 09:56 조회 939 트위터 페이스북

나의 큰오빠는 5년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때나이 61세 막 환갑을 넘긴 명절 이맘때쯤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빠 장례식에 가보지도 못했다.

이렇게 말하면 난 너무 불효막심한 동생이다.

그 당시 여건이 그랬고 나의 부도덕한 행동을 애써 변명치는 않겠다.

우리 가족은 엄마의 자살로 인해서 일명 콩가루집안이 되었고 모두 서울에 사는데도 서로 왕래안한지가 어언 십년이 넘었다.

누구 한사람의 잘못이랄 것도 없이 우리 가족은 남보다 못한 그런 혈혈단신의 처지가 되었다.

아버지를 닮은 나와 큰오빠는 어려서는 오빠가 나의 롤모델이었다.

그림과 글을 쓰는데도 큰오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서 얌전했던 작은 오빠와 달리 큰오빠는 반항적이었다.

태권도를 배워서 그당시 부관장까지 하며 끼있는 친구들과 다니며

고등학교 때는 상암동 깡패들에게 날렵한 발차기를 하며 싸우는 것을 보았을 땐 내 가슴이 서늘하였다.

내가 1980년에 결혼하고 오빠는 1981년도에 결혼하였다.

러나 원앙부부의 시샘인지 오빠와 올케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질 않았다.

그럼에도 부부사이는 좋았고 오빠는 국방부에 오래 다닌결과 국방부팀장의 지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지위, 명성 따위가 뭐가 필요하랴! 오빠는 식습관, 스트레스 등으로 간에 이상을 보였다.

그래도 현대문명이 좋기 때문에 나는 오빠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리라고는 예측을 못했다.

남편의 친구이기도 한 오빠땜에 남편을 만났었다.

이른 남편의 죽음에 오빠는 나에게 죄책감을 느꼈으나 그러나 어쩌랴. 그것은 남편의 운명인 것을

내가 오빠애게 하고싶은 말은 어찌되었든 오빠! 나를 용서해달란 것과 나도 오빠를 용서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가 유명인사가 될줄 알았는데 이렇게 운명을 달리할줄은 몰랐다.

오빠의 죽음에 내가 보상하는 길은 단주를 하면서,

나의 지난날들을 여러사람에게 간증하고, 메시지를 전하며 다시는 나같은 알코올중독자가 나오지 않기를 전하는 것이다.

오빠!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엄마랑 남편이랑 편하게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