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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솔] 나의 자만심과 교만심

2015년 07월 02일 15:54

관리자 2015년 07월 02일 15:54 조회 6684 트위터 페이스북

나의 자만심과 교만심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바보였다.

술을 처음 접했을 때는 무슨 맛인지 왜 마시는지 몰랐다. 단지 힘들어서, 기대고 싶은 마음에 접하게 된 술이었다.
몇 년 동안은 힘들 때마다 가끔 마시는 정도의 술을 마셨다. 그러나 애들이랑 살아가려니 세상이 만만치 않고 부딪히는 벽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어린나이에 애들 데리고 살아가는 내 모습을 좋은 시선으로 봐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했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지쳐 집에 돌아오면 어린 애들을 돌봐야 하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가 자연스럽게 많이 쌓이게 되고 푸는 법을 술이란 것에 의존하며 조금씩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고 횟수도 늘어갔다. 이 시초가 지금의 내가 되어있으리라는 상상도 해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애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생활도 조금 안정이 되어갈 무렵 그동안 애들 때문에 미뤄왔던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것 보다 내가 좋아하는 산행을 하면서 푸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말마다 산행을 하게 되었다.
산행으로 인해서 술 마시는 횟수가 줄어든 만큼 내 자신과 몸은 자연스럽게 다지게 되었다
.

그러나 이런 행복도 잠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교활한 술을 계속 마시는 계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교만심과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서 나는 절주할 수 있다, 절주하면서 일도 하고 등산도 계속 할 수 있다고 장담을 하고 몇 년을 산행과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나에게 힘든 일들이 닥쳐왔다. 애들 아빠와 누나의 문제로 법적으로 가야할지 그냥 참아야 할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할지 몇 개의 숙제가 나에게 남겨졌다.
그때부터 술을 미친 듯이 마셨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술을 마시고 토요일 하루 안마시고 일요일에는 산행을 강행했다. 산행 후 녹초가 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퍼에 들려서 소주 2병을 사들고 집으로 와서 마시고 자는 것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려고 일어나서 거울에 비춰진 나의 모습을 보았다.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 거울 속에 비춰지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싶어 당분간 금주를 하자 마음먹고 일과 산에만 매진을 했다.
몇 개월이 지나고 어느 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이었는데 그때는 환청인지 모르고 너무 놀라서 부모님을 올라오시게 해 절에 갔다. 빙의가 들은 줄 알았기 때문이다.
몇 군데 다니고 나서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보자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알코올성 환청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되었다.
부모님은 이 말에 깜짝 놀라시고 어떻게 몸이 이렇게 되도록 술을 마셨냐고 야단과 꾸중을 들으며 한없이 울었다.
한심한 내 자신 때문에...

병원은 미치도록 가기 싫었지만 부모님 뜻대로 2011년 의왕 다사랑병원에 입원해서 두 달 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퇴원 후 다시 일을 시작했고 산행도 열심히 다녔다. 2년간 별 탈 없이 애들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우연치 않게 다시 술을 접하게 되고 금주도, 절주도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교만이 내 마음속에서 다시 꿈틀거리고 올라왔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술 마시고 있는 내 자신을 보았고 또 금주를 시작했다.
산행도 좀 더 힘든 백두대간을 신청해서 다니게 되었다. 1년은 일도 산행도 별 탈 없이 했다.

우연치 않게 접한 한잔의 막걸리.
한잔의 막걸리로 인해 술을 다시 조금씩 마시게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 환청이 재발됐다.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없어지겠지 생각하고 힘들고 미칠 것 같아도 꾹 참고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백두대간도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보니 체력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체력으로 산행을 계속하게 될 경우 아차하는 순간에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1년 반 만에 백두대간을 포기하고 죽기보다 싫었지만 아빠에게 말씀드리고 환청치료를 위해서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환청치료를 5개월 입원치료 후 퇴원을 했다.

퇴원 후 일도 그만 둔 상태이고 백두대간도 그만 둔 상태라 나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아들과 딸은 내 걱정으로 내 눈치만 보는 것 같고 부모님은 내 걱정으로 포항생활을 접으시고 수원으로 이사를 하셨다.
하루하루를 나의 걱정으로 매일 집에 찾아오셔서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감시하셨다. 답답함이 밀려왔다.
아들은 군에 가고 딸은 낮에 출근을 하기에 혼자 있는 나를 위해서 부모님이 그랬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갑갑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다보니 몰래 술을 마시고 애들이랑 부모님에게는 안 마시는 척을 했다. 화근이 된 것이 환청약과 수면제를 복용하면서 약간의 술을 마셨는데도 인사불성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눈물로 나에게 사정을 하시고 아버지는 아무말씀 없으셨다.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답이 없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술이라는 것이 내 의지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고 혼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술의 노예가 되어서 술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가 싫었다. 술로 인해 찾아오는 몸의 변화와 그로인해 사랑하는 가족들의 걱정과 불안, 미안함과 죄송함, 그리고 좋아하는 산도 포기해야 하는 이런 현실이 싫어졌다. 술은 혼자서는 절대로 끊을 수 없고 나 혼자만의 의지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졌다. 술 마시기 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버지의 의견대로 지금의 아주편한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해서 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한번뿐인 소중한 내 삶을 너무 방치해둔 것 같았다.

이제와서 후회도 하고 자책도 하고 내 자신한테 원망도 해본다. 이젠 행복과 기쁨과 평온함으로 채워나가고 싶다.
아리솔 선생님들과 AA선생님들의 경험담을 듣고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만심과 교만함으로 채워졌는지 알게 되었고 올바르지 않은 단주생각과 혼자 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교만심을 버리고 안일한 생각으로 경솔했던 지난날을 본보기로 삼고 조절망상과 재발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기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협심자가 있기에, 좀 더 현명하게 이겨나갈 것 같다.

먼 훗날 내 삶을 되돌아 보았을 때 지금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참 잘했구나 아니 잘 버티고 잘 살았구나 생각이 들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