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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솔] 나의 아버지

2015년 07월 02일 15:35

관리자 2015년 07월 02일 15:35 조회 6884 트위터 페이스북

나의 아버지  

 

청소년기에 부르던 호칭 아빠! 성년이 되어 부르는 호칭 아부지!
우리집 딸들은 아빠를 아부지라 부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느 순간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문득 마음속에만 미안함과 죄송함을 담아두고 있었던 아부지가 생각났다. 그건 314일이 72세인 아부지의 생신이셨기 때문이다.
내가 알코올문제가 있던 2010년 이후로는 생신 때 제대로 찾아가지 않았다. 그냥 생각나면 용돈만 조금 보내드렸을 뿐 전화도 거의 안하고 엄마를 통해 몇 마디 전하는 것이 다였다.

어렸을 때 아부지는 딸들 중 하나인 나를 많이 데리고 다니셨다.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낚시였다. 그 중 겨울얼음낚시와 바다낚시가 기억에 남는다. 추위에 떠는 나를 조그만 텐트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시며 혼자 낚시를 하셔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주셨다.
아들을 무척이나 기다리셨던 아부지는 내가 태어나서 첫돌 잔치에 남자아이 한복을 입히셨고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짧은 남자아이 머리와 남자아이 옷을 입히셨다.

그랬던 아부지와도 사춘기 시절부터 멀어진 것 같다.
난 사회생활을 하며 가끔씩 회식으로 술이 취하면 아부지께 전화를 걸어 투정을 부리곤 했다. “아빠! 사랑해! 아빠는? 아빠도 딸 사랑하지?”라며 주정을 했다. 하지만 술문제가 생기고 난 아부지를 더욱더 멀리했고 아부지 또한 나에게 별로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면서도 혼자서 고민하고 걱정하시고 하는 모습을 늘 엄마가 보시고 나에게 전해주셨다.
난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냥 듣고 잊어버리곤 했다.

재발이 된 후 5개월이 돼서야 엄마 아부지가 병원에 오셨다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을 붙잡고는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나를 잡고 어떻게 할거냐며 당장 술 안 마신다는 나의 대답을 듣고자 몇 번을 물어보셨다.
엄마 말씀이 내가 병원에 입원한 후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밤에 혼자 훌쩍훌쩍 혼자서 우는 모습도 보이시고 아부지가 잘못 키워서 그런 거라며 자책을 하시고 엄마에게 내 걱정과 지난날의 나의 이야기들을 몇 번이나 하고 또 하셨단다. 그 말을 듣고 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가족들을 힘들고 아프게 한 건가, 라는 생각에 너무너무 내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았었다.

다른 가족들은 별로 안중에 없었지만 엄마 아부지를 본 후로는 더욱 마음을 굳게 다진 것 같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아픔을 느꼈고 내가 느끼는 아픔보다 몇 배, 아니 몇 십배나 마음고생하시는 아부지를 생각했다.
이러다가 돌아가시면 난 이 큰 죄를 어떻게 용서를 빌까 라는 생각과 부모라는 이유로 이렇게 큰 고생을 하시는 모습에 정말정말 큰 죄인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 아이가 나와같은 상황이 왔다면 과연 내 맘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단주를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중이다.
요즘도 아부지와는 통화를 잘하지 않는다. 그냥 엄마를 통해 나의 생활들을 전해 들으시며 믿고 편안해 하신단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우리딸 한다면 하잖아라는 예전의 나의 모습을 기대하며 용기를 주는 말들을 전해 듣는다.

올해 송년회에는 엄마아빠를 꼭 오시라고 하고싶다. 그리고 내년 아부지 생신 때는 내손으로 오랜만에 미역국이라고 끓여드리고 싶다.
지금처럼 지내야 하는 나의 삶을 돌아돌아 아주 멀리도 돌아온 딸을 바라보며 기다려주고 믿어주신 아부지께 정말정말 감사드리며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만 딸이 단주하며 온전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계셔주신 아부지께 사랑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더 늦기 전에 꼭 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