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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솔) 공동체의 힘!

2017년 02월 07일 15:57

관리자 2017년 02월 07일 15:57 조회 13546 트위터 페이스북

나는 초등교사 선생님이 되었어야 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학비를 대주실 엄마가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하였다.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도피처삼아 취.집을 갔다.

그때부터 나의 주제가 늘 초등학교 교사였어야 했는데...였다.

나는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충동적이고 감정기복이 심하고 모든일에 자신이없고 소극적이었다.

결혼후, 부산에서 살게 된 내앞에 펼쳐진 거미줄같은 시월드는 나를 숨막히게했다.

그래서 남편을 꼬드겨 6개월만에 서울로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 비빌언덕도 없던 우리에게 그당시 한창뜨던 그룹에다니던 남편의 학교선배는 희망의 동앗줄 그자체였다.

그 선배의 입김으로 소위 요즘말하는 청탁으로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된 남편은 들떠있었고,

나도 서울을 주장해온데 대한 명분이 서게 되어 고생 끝 꽃길 시작인줄 알았다.

두 아이를 낳고 작은 아파트까지 마련해가며 잘살던 우리에게 97IMF가 터졌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남편은 구조조정이 되었고 백수가 되었다.

그때부터 시작한 다양한 자영업은 큰 손실을 남기고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 이후 10년의 흉년의 때를 지나는 동안 아들셋을 낳고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채워지지않는 지갑과,

사춘기 아들과의 갈등으로 나의 마음역시 황폐해지고 우울이 가득 차오르게 되었다.

막내가 어린이집 종일반에 다닐 때 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자수입으로 괜찮았고,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아래 일을 다니긴 했어도 나는 일 보다는 잿밥에 관심을 드러내며

내앞에 감추어져 있었던 끼와 허영심이 밖으로 분출하면서

회식과 노래방과 누나라고 부르며 따르는 애들하고 매일매일을 희희낙락 즐기며 살았다.

이때부터 나의 술역사가 시작되었다.

지난 토요일 오후, 여유롭게 쉬면서 TV를 보고있는데 남편에게 문자가왔다 나 오늘 집에 안가니까 편하게 쉬어였다.

남편에대해 무조건 속이 꼬여있는 나에게 그 문자는 마치 나 집에가기싫어, 당신 좋아죽겠지? 어디한번 편하게 쉬어봐!” 라고 말하는 듯했다.

문자로는 남편의 진심을 알수가없는 상황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참 왜곡되고 편향된 시선으로 남편을 대한다는걸 또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냥 ㅇㅋ라고 보내려다가 진의가 뭐냐?” 라고 보냈다. 답이왔다.

오고갈 때 미리미리 연락달라며? 해도 문제네...”

그말은 틀리다. 나는 올때만 연락달라고 했지 안올땐 연락할 필요없다는 뜻이었다.

남편이 내게 하는 모든것을 나는 온몸으로 튕겨내고 남편역시 애들과 강아지랑 소통할뿐 나는 그에게 투명인간이다.

이렇게 된데에는 나의 술 주사에 바가지가 한몫했고, 4년이나 떨어져 살게된 세월이 간격을 벌여놓았다.

처음에 만난 술은 나의 친구이자 상담가이자 남편이었다. 쉽게 친해졌다.

술과 만나는 동안은 세상 근심걱정이 잠깐 잊혀지는 것 같았다.

몰래먹던 술은 점점 내 시간을 지배하면서 아이들과 남편앞에서 자주 목격이 되었고, 아이들은 불안을 느끼고,

남편은 분노를 가까스로 참아내며 사는 날들이 잦아졌다.

그러던중 남편은 지방으로 일을 찾아 떠나게 되었고, 남들은 나를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로 띄우며 부러워했다.

그렇게 나는 자유부인이 되어 술과 함께 희희낙락 지내게 되었고 알코올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찾아간 외래진료는 내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술을 조절하고 싶어도 안되는 중독성 때문에 나는 또 다시 외래의 문을 두드렸고, 희망병원 원장님은 약과 함께 다른 처방을 주셨다.

모임을 소개해 주시고 나가보라 권하시며 필독서 2권도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내가 생각을 고쳐먹은 것 같다.

나만이 치료할 수 있지만 나 혼자서는 할수 없다는 깨달음이 왔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대로 지내다가 간경화나 간암으로 병원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죽음을 피해가볼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죽고 사는건 내가 정할수 없는 문제이지만 나의 육신에 술을 들이붓는건 죽음을 재촉하는 길임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아리솔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AA 모임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10년은 꾸준히 다녀보기로 결정하고 다니는 만큼 난 성실히 모임에 출석하기를 다짐해본다.

인생에 어떤 변수를 만날지는 알수없지만 그래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서는 그 위대한 신에게 나 자신을 부탁해 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살 소망이 있고, 살 이유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