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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솔) 단주로 인한 새로운 삶

2017년 12월 15일 10:08

관리자 2017년 12월 15일 10:08 조회 5447 트위터 페이스북

과거 나에 어두운 삶이 언제 어디서부터 꼬여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린시절 나에게 처해진 환경적으로 열악한 부분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성장기에 올치못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과 샹각이 문제가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때 새어머니와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과 나에게 고아라고 손가락질하며 모래와 돌등을 던지며 웃던 아이들 속에 내몸으로 동생을 감싸안으며 나에 등으로 모레 돌등이 날아오는 것을 막으며 동생을 안고 고아란 말에 서러워 많이 울었었다.

고아원으로 보내질뻔한 상황을 동생과 떨어지게 되면 아무데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그때 동생과 난 소년소녀가장의 회장님 댁으로 양아들, 양딸로 들어가게된다.

부자집에 아들,딸로 새로운 부모가 생겨 들어가게 되지만 그때부터 어른들에 보여지는 모습에 많은 분노를 들게 되었던 것 같다.

회장님댁은 지역에서 가장큰 가든을 하는 3층건물을 운영하는 한식당이었다.

이곳에서 결혼식이며 특별한 잔치등 여러모임이 많이 진행되었었다.

따듯한 잠자리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밥은 있었지만 차라리 동생과 둘이였던 춥고 배가 고파도 둘이였을때가 났다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았었다.

동생과 둘이 남겨져 생활하는 모습들을 찍어 버려진 불쌍한 모습으로 동생과 나는 티비에 방송이 되었었고, 그 후 회장님댁에서 아들,딸로 잘크고있는 포장된 모습으로 방송이 되었었다.

그후 회장님댁 새 부모는 좋은 일들을 많이 하신다며 상을 많이 받았고 가자들에 카메라에 찍혀 하시는 일들이 잘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도 많이 하는 듯했다.

그러나 난 회장님댁에서의 생활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좋은옷과, 좋은 학용품, 좋은 반찬을 담은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다녔지만 새벽에 일찍 일어나 식당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일을 거들다 학교에 등교하고 하교후엔 주방 한 구석에 잔들쌓인 고기를 구운 불판들을 쇠수세미로 닦아야 했었다.

어린 나는 손이 작아 고무장갑도 낄수가 없었기에 맨손으로 영업시간이 끝날 깨까지 일을 했었다. 힘들었었다. 서러웠었다. 그 고된일들을 난 꼭 커서 어른이 되면 성공할거라는 생각으로 불판도 닦고 시키는 데로 했었던 것 같다. 그런 각오로 고된일들을 버티며 해낼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없이 자라는 어린시절의 세월을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아프고, 힘들고, 서럽고, 괴로운 날들을....!!

그렇게 자라 나면서 나에게 기회가 왔었고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위해 최선을 다 했다. 어쩜 죽을 힘을 다했다는 표현이 나을지도 모른다.

골프 연습장에서 일하던 나는 연습장 사장님이자 유능한 골프 코치였던 스승에게 골프를 배우게 된다.

그전에 난 막 스무살이 되던해에 처음으로 심장이 뛰는 사랑을 하다가 다 말할수 없는 아픔으로 이별에 난 죽음을 택했다. 늘 버려지고 이용당하고 세상에 난 왜 이러한 환경속에서 태어났으며 하는 원망과 분노로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에 세상을 저버리려고 소주 3병에 수면제 300알을 준비해 1병당 100알씩 타서 들여마시고 손목을 2~3회걸쳐 칼로 그었다.

그리고 기억이 없다. 천만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맥을 끊으려고했던 것이 정맥이 끊어져 수술이 되어있었고 내 옆엔 날 프로로 만들어주신 스승님이 옆에 앉아있었다.

몇칠째 출근하지 않는 나의 주소를 찾아와서보니 피범벅이가 된 바닥에 토하다 거품물고 쓰러져 의식이 없는 상태를 보고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고 하셨다.

그때 스승님의 눈을 보고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기에 울기만 했었다. 스승님은 등을 돌리고 내가 한참을 다 울때까지 그러고 서계셨다.

그후 클럽이 손에 첨으로 지여지고 어린시절 구질구질한 기억속에서 벗어나려고 죽을 힘을 다해 연습에 연습을 했고 처음으로 다가온 못다한 첫사랑의 아픔을 연습으로 메달리며 새로운 삶을 살려고 토가 나올것같은 울렁거림이 올라올 정도로 연습을 하면서 난 프로가 되었다.

정말 새로운 삶을 위해 온 힘을 다해 기술을 익히며 악발이 연습벌레로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렇게 난 프로가 되어 나에 것 모습은 화려해지고 그 누구도 날 막 대하거나 무시하지 못했다. 그것이 새로운 삶이라 생각했는데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속에서 나는 다시 타락하고 있었다. 지난날이 세월속에서 날 무시하고 서러웠던 날들의 복수라도 하듯 난 변하고 있었다.

그 또한 다 사연을 말할수 없지만 난 내가원하는 새로운 삶이 아니라는건 확실했다. 겉모습은 화려해도 속엔 늘 어둡고 분노로 가득했기에 술을 많이 먹게 되었고 결혼해서 아이 출산후 급격하게 산후우울증이 오면서 알코올 중독자의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는 마음의 병이 암으로 말하면 말기가 되어서 센터를 만나게 되었다. 술에 문제도 문제지만 마음속에 병이 치료되지 않으면 영원히 술에서 벗어날수가 없다는걸 알았고 엉켜버린 나에 문제점들을 프로그램을 통해 받아들이며 생활해온 결과 모든 문제점은 나에게서 출발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환경속에 있다고 해서 누구나가 나처럼 중독이 되는건 아니란걸 알았고 내가 선택한 것이란걸 받아들이면서 진정한 새로운 삶, 평온한 새로운삶, 마음속이 자유로운 삶의 문을 열려고 노력한 결과 치료공동체는 내가 원하는 삶을 찾게 해 주었다.

마음에 분노, 원망, 미움, 증오 등 날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을 긍정에 눈을 볼수 있다는 것이 지금것 힘들었던 마음의 병이 치유가 된 것이다.

마음에 병이 치유가 되자 단주는 저절로 따라왔고 간혹 분노가 올라와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기에 갈망에 대한 두려움이 덜하다.

난 센터로 인해 다시 태어났고 나에 새로운 삶을 타락시키지 않기위해 늘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며 내려놓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감사함을 잃어버리는 순간 위험에 빨간불이 켜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