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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솔) 절망이란 긴 터널에서 헤매고있던 나와 지금의 나!

2016년 07월 26일 10:41

관리자 2016년 07월 26일 10:41 조회 6295 트위터 페이스북

저는 43살에 아이가 여섯명인 평범한 주부입니다.

지금현재는 제 이야기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것같습니다.

제가 학교다닐때나 지금현재도 성폭행 사건들이 매체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아픔과상처가 두번씩이나 있었습니다.

술도 모르는 고등학교시절에 그상처 때문에 처음으로 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통과 절망감은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수 없었습니다.

상처를 입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진 저를 보시던 어머니께서도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누가 알게될까봐 저는 정신과치료도 받지못한 상태에서 어머니께서는 늘 걱정을 안고사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과감해졌습니다.

선배들과 어울려 술도마시고, 패싸움이란것도 하고, 폭행도 해보았습니다.

대상자는 항상 저보다 약한 대상자였습니다.

선배들과 어울려다니면서 마신술이 지금까지 이어진것 갔습니다.

저에겐 정말 절망뿐이였습니다. 자살시도도 해보고 자해도 여러번 해보고 정말이지 죽어버리고만 싶었습니다. 왜하필이면 나야! 왜 나야! 하는 원망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프로그램 주제로 정하면서 여러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과연 다른 분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망이란 터널에서 나오기 위해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아직도 그생각만 하면 가슴이 터져버릴것 갔습니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남아서인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남아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술을 먹고 학교등교도 소홀히하고 늦게까지 술만

마시러 선배언니들과 밤거리를 헤매고 다닐때 어머니께서도 저를 찾아매일같이 밤마다 거리를 헤매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술을 배운지 얼마되지 않은 나는 금방취해버렸고 길가는 약자들에게 폭력도 행하고, 돈도 빼앗아 그돈으로 술도 사먹고 그랬습니다. 나에게 고통과 절망만 안겨준 그 사람들이 용서가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그 절망과 고통의 터널로 밀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제가 약자에게 폭력을 사용해서 경찰서에 가게 된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한걸음에 달려오셨습니다. 경찰들이 어머니께 훈계를 하시는데 전 아무감정도 느끼질 못했습니다.

제때에 어머니께서 데리러만 오셨다면 그런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더 망가지고 상처받을 일만 골라서 행동했던것갔습니다. 제가 여러선생님들께 제 치부를 이야기 한다고해서 그 고통과절망에 터널에서 빠져나올순 없겠지만 마음에 돌덩이 하나라도 내려놓고싶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술에젖어살던 제 옆에 지금의 배우자가 생겼습니다

결혼이란것을 한 저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수만 있다면 결혼이란 선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에 착각이였습니다.

오히려 배우자에게 상처만 주는 아내가 되어버렸습니다. 매일을 술에젖어 살았기 때문입니다.

술에젖어사는 생활들이 반복되어 버리면서 아이가 생겼습니다. 아이가 생겼다는 말에 배우자는 매우 기뻐했지만 저는 싫었습니다. 술을 먹을수가 없기때문이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술을 입에대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배우자가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 과거에 메어살지말고 나하고 아가하고 행복하게 살아보자.”

하면서 저를 설득아닌 설득을 하였습니다. 배우자말을듣고 그렇게 노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린아이를 방치해놓고 아침부터 저녘까지 술에젖어있는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이였습니다.

저에 이런모습을 보던 배우자가 더는 못보겠는지 정신과치료를 받아보자고해서 정신과 치료도 받아보았습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않다보니 정신과 치료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면서 아이를 게속출산하였고 막내 아들낳고는 우울증까지 같이찾아와 더 많은양의 술을 먹게 되었습니다.

전 지금도 밤길이나 엘리베이터를 혼자타는게 싫고 무섭습니다.

지금 중학교 다니는 딸도 귀가시간이 늦어지면 안절부절하지 못합니다. 우리아이에게도

그런일이 생길까봐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럴때마다 전 술을 사서 한병마시고 딸아이를 기다립니다. 본 정신으로는 무섭기 때문에 항상 술을 마신후에 기다렸던것 갔습니다.

배우자가 마지막으로 병원 입원을 권유했습니다. 배우자가 병원 이야기를 꺼냈을때 화가났습니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정신병원에 가야 하느냐고 따지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나지막하게 한마디 하는것입니다.

자기는 저를 절대 포기할수 없다는 말이였습니다.

그 말을듣고 바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습니다.

제 주치의선생님께서 진행하시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정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주치의선생님과 1:1 면담을 하자고 했습니다. 면담과 상담을 반복해 하면서 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절망이란 긴터널은 걸어나오면 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상담도 하고 샐활도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놓고 6개월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퇴원을해서 주치의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센터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단주를 하게 되었고

어느순간 터널을 걸어나오고있는 제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병원장님도 변해가는 저에모습을 보시면서 저도 충분히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하시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병원으로 가게끔 인도해주신분이 그분이란 생각을 하면서 지금처럼만 배우자와 아이들도 너무 좋아하고 행복해 하기 때문에 그분이 저를 단주에 길로 가게끔 해주신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대하신 그분께서 저에게 절망과 고통에 긴터널에서 당당히 걸어나와 행복한 삶을 살아보라는 뜻으로 센터로 인도해 주시고 단주에 길로도 인도해주신듯 합니다.

다신 절망과 고통의 터널로 가고싶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면서 당당한 엄마로 살것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는 어찌할수 없었던 일이였구나 하면서 터널을지나 환하게 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 나오려 합니다.